아웃라스트 단편.
‘어쩐지 파리가 이상할 정도로 많더니만.’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떠오른 웨일런 파크의 첫 생각이었다.
깜빡이는 노트북 화면을 눈 앞에 두고, 주저 없이 엔터키를 눌렀다. 잠깐의 기다림이 지나니 파일이 온라인에 무사히 업로드 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 간결하기 그지없는 행동은 평범한 프로그래머에 지나지 않았던 웨일런의 일상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의 일상은 이미 그 폭로의 몇 주 전부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전세계로 퍼져나간 그 비디오파일에는 바로 그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건, 마운트 매시브 산에 위치한 격리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일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버림받은 병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실험이라는 이름을 쓴 인권유린, 처참하게 실패로 끝난 실험과 인세의 지옥이 되어버린 병원, 그리고 초자연적인 실험체가 날뛰면서 벌이는 생생한 살육의 현장. 비디오 파일 안에 찍힌 것은 병원이 아닌 인간 도살장에 가까웠고, 어느 것 하나 혀를 내두르게 하지 않는 광경이 없었다. 그리고 그 참극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웨일런은 책임을 지고 그 사건의 원흉인 머코프 코퍼레이션을 고발했다. 부인의 여지없는 명백한 증거들은 인터넷의 그물망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고, 여러 네티즌들의 하드 디스크 안에 안착했다. 심지어 유튜브에도 이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영상들 일부가 올라왔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운영자의 삭제와 네티즌들의 업로딩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 영상들이 조작된 것인지 진짜인지는 논란이 분분했다. 웨일런이 모든 덧글들을 확인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제법 많은 이들이 CG티가 나는 페이크 필름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어떤 이들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영상이 조작된 것 같지는 않다고 격하게 반박했다. 특히 새까만 구름과 새까만 괴물이 인간을 육편으로 짓이겨버리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덧글들 사이에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어쨌든 간에 웨일런은 자신의 책무를 완수했다.
후회가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웨일런은 두려웠다. 한 여자와 두 아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써, 영상을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 파일을 올리는 순간, 당신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도 끝장날 겁니다.’ 그 조력자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 개인정보를 파기했다고는 하지만, 머코프가 그를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일개 프로그래머이고, 돈이나 권력과는 무관한 인생을 걸어온 웨일런이 더 이상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임시방편으로 리사에게 진실을 밝히고, 그녀에게 잔뜩 혼이 나고 위로를 받은 뒤, 모자를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혼자서 집에 남아서 미끼 역할을 했다. 리사가 이것만은 허락할 수 없다면서 만류했지만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최악의 사태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웨일런은 보기 드물게 고집을 피웠고, 결국 두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멀어져 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보면서 웨일런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리사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워버렸다. 괴상한 환자복을 입은 데다가 다리와 배에 큰 부상을 입었고, 전신에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남편이 느닷없이 빨간 지프를 끌고 왔을 때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을 텐데, 이제 목숨이 위험하니 헤어져야 한다면 누군들 기가 차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리사는 울지 않았고, 웨일런 역시 울지 않은 채로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기약 없는 희망만을 교환했다.
“조심해, 여보.”
“당신도.”
홀로 남은 집안을 둘러보면서 웨일런은 병원을 헤매던 바로 그 순간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도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만든 식사 냄새와, 리사가 즐겨 사용하던 향수 냄새, 어린 아들들의 체취가 진하게 배여 있었다. 벽지며 접시, 크레용 하나하나에도 자신들의 추억이 서려 있었다. 리사가 첫 아기를 낳았을 때, 그 쥐면 꺼질 것 같은 핏덩이를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나 눈앞을 아른거리는 로르샤흐 그림에, 천장에 무수히 걸려 있었던 시체들, 여자 형태로 개조된 머리 없는 남자, 벽에 걸린 시체, 피로 물든 그라인더, 머리 위에서 펑 터지던 제레미의 몸뚱아리가 이 따뜻한 추억 위에 덧칠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언제 저 문을 박차고, 머코프의 인간들이 쳐들어와서 자신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니, 총알 한 발로 끝날 수나 있을까? 그들이라면 자신에게 엄청난 고문을 가할 것이 틀림없었다. 죽여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애걸할 때까지 온갖 고통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그를 지탱해왔던 행복한 추억들도 좋은 지탱목이 되지는 못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웨일런은 자신이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 궁금했다. 병원에서 빠져 나왔을 때 그를 환영하던 햇빛을 보면서 어찌나 감동했는지. 다리와 배의 격통조차도 그 황홀감에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도 아침 해를 볼 때마다 이토록 세상이 아름답고, 또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감동과 동시에 또다시 공포서린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해지기도 했다. 이 불안한 기적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를 도와준 이는 이것이 분명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머코프의 이사들과 CEO는 저 영상들을 보고 달려드는 기자들의 추궁에 쩔쩔매고 있었으며, 국회에서는 머지않아 청문회를 소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머코프의 이사들이나, 국회의원들처럼 든든한 백이 없었기에 얼마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서 말소될 수 있었다. 그래서 웨일런은 사람이 길가에 가장 많은 벌건 대낮에만 집 밖으로 나왔고, 밤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얼떨결에 끌고 나온 빨간 지프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머코프의 보복만이 아니었다. 저 빨간 지프의 원래 주인에게 웨일런은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일즈 업셔. 웨일런이 어리석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내부고발을 했을 때 메일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마일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저 그가 기자이고, 사회정치 분야 전문인 데다가 부패한 정부부서나 기업에 대해 가차없고 날선 비판을 가득 쏟아내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모한 제보를 했을 때 맨 먼저 그를 떠올린 것일지도 몰랐다. 이것이 그의 최초이자 최대의 실수였다.
어느새 12월이 되어 있었다. 콜로라도의 가을은 낙엽들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추운 겨울은 그 자리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볼더에도 어김없이 겨울 추위가 찾아왔고, 평원과 산맥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온도계의 수은주를 오르내리게 하는 장난에 맛들려 있었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작은 의자에 덩그라니 앉아, 웨일런은 빨간 지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그의 실수였다. 병원에서 괴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뛰어다닐 때에는 자신의 목숨 구하기에 급급해, 내부고발에 대한 것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신랑 타령을 하는 변태로부터 도망칠 때에는 세로로 두 조각 날 뻔했던 악몽 때문에 내부고발에 대해서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에 절어 있었을 때에는 이 모든 충격들이 겹쳐 있는 나머지, 그는 자신이 맨 처음 보냈던 한 편의 이메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빨간 지프를 발견하고, 무의식적으로 시동을 건 다음, 자신을 뒤따라오는 그 검은 형체에 기겁하면서 도망쳤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웨일런은 제정신을 되찾았고, 그제서야 자신의 머리맡에서 달랑대는 명찰을 볼 겨를이 생겼다. 그는 지프의 주인이 자신이 메일을 보낸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후회했다. 저 용기 있는 기자는 자신의 제보를 덥썩 믿고, 메일을 받기야 무섭게 정신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병원 속으로 뛰어들어가, 머코프의 비리를 파헤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병자들과 직원들, 군인들과 괴물 같은 이 세상 것이 아닌 광기에 마주쳤을 것이다. 여기에 웨일런은 그의 차를 타고 도망치면서 그 기자의 마지막 활로를 철저하게 빼앗아 버렸다. 설령 신의 가호가 있어서 그 남자가 병원 밖으로 탈출했다고 하더라도, 웨일런이 목격한 그 괴물, 월라이더에 의해 끔찍한 최후를 맞았음이 틀림없었다. 맙소사, 마일즈를 죽인 것은 바로 그였다. 웨일런은 자신의 생환이 마치 마일즈의 생명을 제물삼아 얻은 전리품 같아서 몹시 괴로웠다.
웨일런의 폭로는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용기를 무의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치기마저도 의미 있는 행동이었을까? 그는 이것에 대답할 자신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웨일런은 차를 끌고 시내로 향했다. 활기 있게 하루를 지내는 가족이며, 연인이며, 노인들이며, 청소년들의 밝은 표정을 보자 그의 마음은 더더욱 뒤숭숭해졌다. 저 죽음과 광기로 가득 찬 장소를 아예 처음부터 몰랐으면 웨일런 역시 저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날이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어느 직장에 들어갈지를 고민하면서도, 리사의 밝은 표정에 따라 웃고 아이들의 개구쟁이 짓을 눈감아 주는 평범한 가장이었겠지. 그렇지만 그는 너무 많은 선을 넘어버렸다. 그는 적적한 집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카페와 마트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식료품이며 일상 용품들이 마트 카트에 가득 쌓였다. 평소에는 사지도 않았을 과자들까지 쌓아놓은 것을 보니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기력도 나지 않아서 그대로 계산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 뒤였고, 사방이 어둑해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웨일런은 약간 초조해졌다. 9월 17일, 불과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24시간도 되지 않는 경험은 그에게 어둠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공포감을 새겨놓았고, 그는 저 어둠 속에 무언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존재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지곤 했다. 이럴 줄 알면 아예 나가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그는 현관 앞에 향했다. 어서 집에 들어가서 불을 환하게 밝혀놓은 다음, TV를 큰 소리로 켜 놓고 싶은 심정으로 가득했다. 주머니 어딘가에 있을 열쇠를 뒤적거리면서 문 앞에 섰다.
“ , ”
그리고 누군가가 악력으로 부수기라도 한 듯한 손잡이, 문에 묻은 검은 손자국을 보고 웨일런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볼더의 자택 문 앞에 서 있는 평범한 프로그래머, 웨일런 파크는 어느새 9월 17일의 마운트 매시브 격리정신병원 앞에 서 있었다. 폭행, 고문, 살인, 식인, 시간, 온갖 악덕이라는 악덕이 넘쳐흘러, 이성과 도덕을 압도하고 야금야금 먹어 치우던 그 지옥의 나날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해왔지만, 그 악몽의 한철은 현재의 웨일런에게 제멋대로 다가와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문이 제멋대로 열렸다. 희미하게 남은 햇빛이 그의 앞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통로 너머는 까마득한 어둠이었다.
“거기 누구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그 어둠을 노려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낮에는 그토록 많았던 사람들은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저 통로 안쪽에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원한을 지닌 정신병자든, 머코프가 보낸 용병이든, FBI든, 경찰이든 간에 말이다. 어찌됐건 그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만약 호의가 있었다면 문 앞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렸겠지, 이렇게 할로윈 때도 반갑지 않은 짓으로 환영할 리가 있겠나.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양손에 가득한 짐을 내려놓았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 것은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코끝을 간질이는 것은 낯익은 악취였다.
복도 양 옆에 늘어서 있는 문들이 이렇게 신경에 거슬린 적이 있었을까? 천천히 거실로 걸어가면서 언제라도 문들 중 하나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라는 착시에 시달렸다. 그는 어느 틈에 집 안으로 들어온 파리들 몇 마리가 붕붕대는 것이 유난히 짜증났다. 귓가를 부산히 날아다니는 파리를 미처 쫓아내려는데, 파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윙윙대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미처 돌리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를 억세게 잡아당겼다. 목이 확 꺾이는 듯 했다.
“!!”
무서움에 비명조차도 나오지 못했다. 뒷덜미를 잡아당겨지나 싶은 그 순간, 웨일런은 사나운 기세로 공중에 치솟았다가 그대로 옆방으로 곤두박질쳤다. 정말 끝내주게 아팠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느껴진 익숙한 데자뷰에 그는 자신의 집에서 그 정신병원으로 다시 집어 던져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한층 더 강해진 악취와 함께, 지금 눈을 뜨면 자신이 카펫 깔린 바닥이 아니라 축축한 실험대에 묶여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제발, 리사……얘들아……’
짧은 시간 사이에 온갖 상념이 웨일런의 머리를 뒤집어놓았다. 가족이 보고 싶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마지막 순간에 한번만이라도 리사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죽고 싶었다. 사방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짐승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정신병원의 악몽이 마침내 환청마저 들리게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마침내 웨일런은 천신만고의 각오를 다졌고, 자신의 앞에 서 있을 머코프의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미안, 형씨.”
꺼질 듯 가물가물한 목소리였다. 웨일런은 잠시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앞에 서 있는 것은 머코프의 인간도 아니었고, 악의 어린 정신병자도 아니었고,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말야.”
처음에는 눈 앞의 그것이 시체인줄 알았다. 자기를 묶어놓고 신부가 되어달라느니 아이를 낳아달라느니 운운하면서 톱날을 들이대던 그 ‘신랑’과 비슷한 부류가 만들어 놓은, 구역질 나는 악취미 예술품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그것은 살아 있는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사과 비슷한 말까지 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모습에 압도된 나머지, 웨일런은 그 말을 거의 듣지도 못했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것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되 인간이 아니었다. 고깃덩어리로 착각해도 좋을 만큼 온 몸에 피를 칠하고 있었는데, 그 피들이 썩으면서 온갖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원래 색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피가 끈적하게 엉기는 바람에 그것의 머리카락 색은 검은색에 한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힘겹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어깨를 보니, 어딘가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 그 생각을 하자마자 침대를 간신히 짚고 있는 그것의 손에서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손에서는 검지손가락이 절반쯤 잘려나가, 거무스름한 뼈마디와 검게 변색된 속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왼손의 약지는 아예 송두리째 잘려나가 있었고, 절단면에는 파리 몇 마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웨일런이 그 파리들을 유심히 바라보자 그 산송장은 멋쩍기라도 했는지 어색하게 웃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와 파리들을 낚아채고 손에 꾹 힘을 주었다. 그것의 옷은 뭐라고 해야 하나, 원래 흰 셔츠에 갈색 재킷을 걸치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누렇게 변색된 옷소매와, 실밥이 나가버린 갈색 옷자락을 보지 않았다면 색깔을 추측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의 가슴팍과 배 언저리는 특히나 검붉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웨일런은 그것이 그냥 핏자국이 아니라 상처 자체라는 것을 깨닫고 몸서리쳤다. 다리는, 한쪽만이 간신히 성한 상태였다. 나머지 한쪽은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져 그대로 굳은 것처럼 보였다. 몸통과 마찬가지로 얼굴 역시 핏자국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무언가로 더럽혀져서, 웨일런은 그 몽롱한 두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체 씨가 앉아 있는 침대 시트는 그 몸에서 배어 나온 검은 액체로 많이 더럽혀져 있었다. 한참을 이곳에 앉아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시체 씨는 잠시 왼쪽 어깨를 부여잡더니 괴롭게 숨을 몇 번 내쉬었다.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는데, 몸이 말을 듣지를 않더라고.”
“누구야, 당신?”
웨일런은 온 용기를 짜내서 입을 열었다. 세 달 전의 공포는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는 이젠 적어도 벌벌 떨면서 입만 다물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주위를 요동치는 위협적인 검은 안개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안개는 시체 씨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황당한 대답이었다.
“모른다니, 그럼 나를 왜 쫓아온 거야?”
“저 차.”
“저 차?”
“저 차……낯이 익더라고. 그 몇 달 전에, 병원에서 저 차가 나가려고 하길래 잡으려고 했는데, 그만 놓쳤지 뭐야. 찾느라고 고생 좀 했어. 이 꼬락서니를 하고 있으니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다리가 병신이 되어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고 말야.”
그는 무언가 충격 때문에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시체 씨의 자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지막 대답에 웨일런은 소름이 돋았다. 저 차. 낯이 익더라고. 검은 안개. 놓쳐버린 차. 도망쳐버린 차. 병원의 정문을 뚫고, 그대로 콜로라도의 숲 속으로 도망쳐버린. 빨간 차. 빨간 지프 랭글러. 랭글러에 달린 이름표. 이름표의 주인, 이 차의 주인은……
‘맙소사.’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인생이 꼬일 수 있단 말이지? 웨일런은 몸을 간신히 일으키고 약간 그와 거리를 벌렸다. 한때 리사와 자신이 하루를 마감하는 곳이었던 침실은, 자신과 자신의 행동으로 산송장 꼴이 되어버린 남자의 부패취로 가득했다. 그래, 마일즈였다. 자신이 보낸 내부고발 메일을 받고, 용감하게 병원으로 뛰어든 기자, 마일즈 업셔. 웨일런은 그곳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참상과, 과학자들의 가학적인 실험, 군인들의 살벌한 총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모포제닉 엔진이라니, 과학의 발전이라는 교양의 가면을 뒤집어쓴 주제에, 실상은 과학은커녕 쓰레기통 속 개똥만도 못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병자들을 강제로 관에 밀어 넣고, 그들의 정신이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실험을 강행한 곳이야말로 그 정신병동이었다. 월라이더가 탈주하고 환자들이 폭주하면서 인세의 지옥이 되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 병원은 이미 월라이더를 잉태하기 훨씬 전부터 인세의 지옥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병원에 들어간 저 기자는 그 인세의 지옥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겪었을 것이다.
“수상한 건 알겠지만, 신고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씨발……몸이 말이 아니라서 어디로 가지도 못하겠네. 왜 이 꼴이 된 건지 기억도 못하겠고……머리 아파.”
웨일런은 오른다리가 다시 쑤셔오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고문대에 묶여서 ‘신부’가 될 뻔 했고, 수많은 시체들과 함께 병원 천장을 장식하는 오브제가 될 뻔 했던 것처럼, 마일즈 또한 이에 준하는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아니, 저 손가락이며 전신에 난 깊은 상처, 부러졌다가 어설프게 붙어버린 다리, 멍한 눈빛, 반쯤 비어버린 기억까지, 저 남자는 자신이 겪은 것 이상으로 날것의 고통을 받았고, 머코프의 암흑의 핵심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이 성한 손가락들로 유지보수했던 프로그램은 저 남자를 지금의 산송장으로 만들어낸 수천 가지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꼬이고 꼬여서, 남자는 죽었어야 했음에도 살아 있었고, 인간이어야만 했음에도 괴물이었고, 자유로워져야 했음에도 그 무엇보다도 속박되어 있었다. 나노머신이라고 해서 공상과학 소설이나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한 재생능력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만화와 달랐다. 월라이더는 인간의 신체기관의 유지보수보다는 생명의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는지, 파손된 근육과 뼈, 장기와 정신적 트라우마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상태였다. 기본적인 유지기능도 결여된 저 몸에 강제로 생명을 우겨넣고, 나노머신으로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바퀴에 구멍이 났는데, 그걸 고치지 않고 자동차를 끌고 달리는 격이었다. 마일즈의 몸은 속된 말로 개판이었다. 속박이라. 미미하다고는 하나 공모자였던 자신은 불안하나마 일상을 되찾았는데, 정의감 넘치는 폭로자였던 저 남자는 그것조차도 얻지 못하고 저 꼴이 되어 있었다. 웨일런의 눈에는 남자의 어깨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괴물, 월라이더의 형체가 똑똑히 보였다. 베르니케 박사는 나노머신의 제어를 원했고, 머코프 사는 나노머신의 병기화를 원했다. 나치스와 자본의 욕망이 한데 얽혀서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이 탄생했고, 프로젝트 월라이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모포제닉 엔진의 적합자이자 월라이더라는 악마의 그릇이 된 것은 정작 실험체가 아닌 일개 기자였다니, 아이러니했다. 저 사람이 겪었을 극한의 공포는 자신의 몇 마디 메일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두통을 가라앉히려는 듯 머리를 감싸 쥔 저 남자를 보며, 웨일런은 정체 모를 죄책감에 잠겨 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 차는 내 것이 아니지만……누가 며칠 전에 버리고 간 것이어서 잠시 보관하고 있었던 거야. 아내도 법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그렇지만 마일즈는 그 거짓말의 시비를 가릴 정도로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그래? 당신 기혼이야?”
“……그래.”
“미안한 짓을 했네. 둘이 지낼 침대를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괜찮아. 당분간……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제어 불가능한 괴물로 충만한 방 한가운데에서 시체에 가까운 남자와 나누는 대화는 놀랄 정도로 일상적이었다. 마일즈는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였고, 검은 액체는 여전히 조금씩 그의 상처자국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체 내부를 나노머신 공장으로 개조한다’라. 제정신이 아닌 것에도 정도가 있었다. 그 결과물이 저 가련한 인간과 괴물의 혼합종이라니. 그렇지만 웨일런은 방심할 수 없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배와 다리로 엄습하는 고통을 억누르면서 캠코더로 확대를 했을 때 느껴진 것은 명백한 살의였다. 이유 없는 폭력에서 비롯된 이유 없는 분노와 광기였다.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나노머신의 군집체가, 자신을 제레미 블레어 모양 풍선처럼 빵 터트려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그는 정신 없이 차를 몰았다. 저 혼합종은 반은 인간이었고, 반은 괴물이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만일 흐릿해진 이성을 되찾고, 웨일런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때에도 마일즈는 인간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을 지옥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먼저 탈출해 진실을 전세계에 유포한 저 가증스러운 내부고발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일단 당신, 씻는 게 좋겠어.”
“됐어. 피곤해. 자고 싶은데, 이 염병할 놈의 머리가 날 잡으려고 아주 그냥……”
“부축해줄 테니까, 자, 일어나.”
죄책감과 공포감은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웨일런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악취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아직은 죄책감 쪽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했다. 9월 17일의 악몽은 여전히 그의 잠자리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그 순간을 핑계로 이 남자를 밀쳐버린다면 그 때야말로 자신의 정신은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에 영원히 속박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아닌, 웨일런 파크로서 말이다. 의도하지 않은 운명에 휩쓸린 상대방을 무시하기에는 그는 너무 마음이 약했다.
마일즈는 100킬로미터도 넘는 볼더까지 걸어온 것이 기적일 정도로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전신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에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월라이더는 기묘할 정도로 얌전했다. 마일즈는 괴물을 저 불완전한 의식으로도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게 틀림없었다. 저 피부에 찰싹 달라붙은 듯한 재킷을 벗겨내자, 피와 검은 유동체로 뒤덮인 찌꺼기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역겨운 광경이었다.
“친절하신 양반이네. 이 꼬라지를 보면 저녁을 못 먹게 될 테니 미리 사과해 둘게.”
몸이 저런 꼴이 되고,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그 기사들을 볼 때마다 느껴진 특유의 신랄함만은 여전했다. 웨일런은 그 말에 마음 속 없는 힘까지 끌어내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서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혼자만이 아는 진실이 이렇게 무겁고 무서울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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